☞ 엘리야와 아합의 만남(18:16~20) 확고한 믿음은 타락한 시대에 대항하는 능력입니다. 엘리야의 메시지가 아합에게 전달되고 두 사람의 만남이 성사됩니다. 이스라엘에 큰 재앙을 불러온 원인 제공자인 아합은 도리어 엘리야에게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라며 교묘히 책임을 전가합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아합 왕조의 죄가 가뭄 재앙의 원인이라고 반박하면서 누가 참신인지, 재앙의 원인이 무엇인지 가리기 위한 대결을 제안합니다. 사실 이세벨은 이방 신의 선지자들을 배후에서 조종한 장본인입니다.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이 이세벨의 상에서 먹었다는 히브리어 관용구는 그녀가 이방 신의 선지자들을 다방면으로 보호하고 육성했음을 보여 줍니다. 참된 성도는 절대다수의 악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히 하나님 편을 택합니다.
☞ 갈멜 산 대결(18:21~29) 두 마음을 품지 말고 오직 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바알의 선지자들은 물론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모였습니다. ‘머뭇머뭇하다’(21절)라는 말의 원어는 본래 ‘절뚝거리다’라는 뜻으로 바알 선지자들의 꼴사나운 종교적 춤을 비웃는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바알을 동시에 섬기며 영적 불구자로 살아가는 것을 빗댄 표현입니다. 엘리야는 아무런 응답이 없는 우상을 향해 ‘묵상하고 있는지’, ‘잠깐 나갔는지’, ‘길을 행하는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라며 점층적으로 조롱함으로써 그들의 신이 얼마나 무력하고 헛된 실체인지 드러냅니다. 화목은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덕목이지만, 바알처럼 하나님과 적대되는 것을 섬기는 이들과는 화목할 수 없습니다.
● 묵상 질문 아합이 가뭄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직장이나 학교에서 강력한 불의와 마주할 때 어떻게 하나님 뜻을 행할 수 있을까요? ● 묵상 질문 엘리야 한 사람의 도전에 다수의 백성이 말 한마디도 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헌신하는데 머뭇거리게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