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민감리교회/주일대예배설교

성탄의 축복

예청 2010. 2. 8. 10:26

본문) 눅 1;77-79
제목) 성탄의 축복

오늘은 교회력으로 강림절 넷째주일입니다.
강림절은 대강절이라고도 부르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강림절은 성탄절 4주 전에 시작이 됩니다.
4주간 강림절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입니다.
강림절 4주째 주간에 성탄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오늘은 강림절 넷째주일입니다.
성탄절을 5일 앞둔 주일로써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야 합니다.

본문의 말씀은 ‘사가랴의 예언’의 일부분입니다.
사가랴는 세례 요한의 부친입니다.
그는 천사로부터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자신이 나이가 많은 것을 앞세워 의심하다가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자 하나님의 역사를 확신하게 되었고 그 때에 그의 입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가 다시 입을 열어 하나님을 찬양하며 성령에 충만하여 예언을 하였는데 그 내용이 (누가복음 1장 67절에서 79절)의 말씀입니다.

이 ‘사가랴의 예언’ 가운데 본문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축복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축복, 곧 성탄의 축복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1, 성탄의 축복은 하나님의 긍휼이 임한 축복입니다.

(77-78절)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1) 긍휼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긍휼이라는 단어는 원어로 ‘스플랑크나’인데 그 뜻은 ‘내장’입니다.
그 의미는 마음 깊은데서 우러나오는 자비와 사랑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은 말로만 표현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머리로만 생각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사랑입니다.
내장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속 깊은 사랑입니다.

우리말에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몹시 안타까운 심정을 표현할 때에 ‘애간장이 탄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애간장은 쓸개와 간과 창자를 말합니다.
쓸개와 간과 창자로부터 우러나오는 마음, 그것이 긍휼입니다.
그것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보다, 자비라는 단어보다, 더 깊은 사랑의 심정을 표현하는 단어가 긍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2) 하나님의 긍휼은 두 가지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① 죄인의 운명에 대한 하나님의 안타까움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롬3;10)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 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골1;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그리고 진노의 그늘 속에 살다가 죽어서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요3;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이러한 죄인의 운명을 보는 하나님의 안타까움이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의 운명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낸 것입니다.

② 하나님의 긍휼은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의 운명을 안타까워 하셔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죄에서 구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68-69절)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3)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의 클라이맥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입니다.
(요일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입니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성탄절 트리나 십자가는 모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증표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통해 우리에 대한 긍휼을 나타내셨습니다.

4) 성탄의 축복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긍휼이 임한 것입니다.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안타까움, 그리고 죄를 용서하시는 마음, 그 하나님의 긍휼이 나타난 것이 성탄절입니다.

아직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분들은 이번 성탄절에 죄인인 나를 긍휼히 여기셔서 죄를 용서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긍휼을 받아들여서 죄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죄에서 구원받은 것을 믿는 성도들은 나 같은 죄인을 긍휼히 여기셔서 용서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성탄절이 되기 바랍니다.

2, 성탄의 축복은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빛이 임한 축복입니다.

(78-79절)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아침 해가 떠올라 어둠이 물러가고 새 아침이 밝아오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임한 빛의 사건, 곧 새 희망의 사건이라는 말씀입니다.

1) 며칠 전에 한밤중에 교회 전기가 나갔습니다.
밖을 내다보니 이 지역이 정전이 된 것은 아니고 배전반의 스위치가 내려 간 것 같았습니다.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서 배전반을 찾아 스위치를 올려야 하겠기에 손전등을 찾는데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택 현관 쪽이 환한 것입니다.
보니까 비상등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보니 계단에도 비상등이 켜져서 빛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살펴보니까 교회 곳곳에 설치된 비상등이 켜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편하게 1층까지 내려가서 배전반을 열고 스위치를 올릴 수 있었습니다.

빛이 비추니까 길이 보였고 그 길을 따라 가니까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이것이 ‘빛의 은총’입니다.
빛은 길이 보이게 합니다.
그래서 문제가 해결되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빛의 은총은 ‘희망’입니다.
길이 보이는 희망이고 문제해결이 보이는 희망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빛의 희망입니다.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마치 아침 해가 돋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자는 희망을 상실한 자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아침 해가 돋는 것처럼 희망의 빛이 비취었다는 것입니다.

3) 예수의 모친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하고 이렇게 찬양을 했습니다.
(눅1;46-47)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는 희망을 잉태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비천함을 돌아보셨다고 희망을 노래합니다.
이제 후로는 내가 복이 있는 자로 불릴 것이라고 희망을 노래합니다.

마리아의 희망의 찬양은 계속됩니다.
(52-53절)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비천한 자는 높아질 것이라는 희망이며, 주린 자는 배부를 것이라는 희망입니다.

4) 예수님께서는 그가 이 땅에서 이루실 일을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눅4;18-19절)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시며, 눈 먼 자를 보게 하시고,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시며, 은혜의 해를 선포한다고 하십니다.
절망 속에 사는 자들에게 희망을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모두의 희망입니다.
가난하고 포로 되고 눈멀고 눌린 자들에게 희망입니다.

5) 우리가 어린 시절에 성탄절이 되면 기다림이 있었습니다.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가지고 올 것이라는 천진난만한 기다림이 있었습니다.
철이 들어 버린 이후에 우리는 성탄절에 기다림을 잃어버렸습니다.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성탄절에 희망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캄캄한 밤하늘에 밝은 별이 떠올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말구유를 비춘 것처럼 우리의 심령과 삶에 희망의 빛이 비췰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야 합니다.

6)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임하는 희망을 알려주는 말씀이 (베드로전서 1장)의 말씀입니다.
① 이 땅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다는 희망입니다.
(5절)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보호, 그것이 성도의 희망입니다.

② 시험을 당할 때에 힘을 주셔서 시험을 이길 뿐만 아니라 오히려 믿음을 자라게 한다는 희망입니다.
(6-7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시험은 근심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시험 중에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런 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시험을 통해 더욱 강해지는 것입니다.
시험을 이길 수 있다고 믿는 것, 그것이 성도의 희망입니다.

③ 부활의 희망입니다.
(3-4절)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성도의 가장 큰 희망은 부활의 희망이며 천국의 희망입니다.
성도는 부활과 천국에 대한 희망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이러한 희망을 다시 회복하는 성탄절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희망을 품고 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3, 성탄의 축복은 우리들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는 축복입니다.

(79절)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목자가 양들을 푸른 초장과 맑은 물가로 인도하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믿는 자들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1) 죄인의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롬3;10-18)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죄인의 삶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는 삶입니다.
속임과 악독과 저주와 파멸과 고생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죄인들을 구원하셔서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려고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2) 평강이라는 단어는 ‘에이레네’인데 이 단어는 세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①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통한 화목을 말합니다.
(고후5;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이 말씀에서 화목이라는 단어가 ‘에이레네’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평안입니다.

② 그로부터 주어지는 심령의 평안을 말합니다.
(골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 말씀에서 평강과 평안이 ‘에이레네’입니다.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룰 때에 주어지는 마음의 평안을 말합니다.

③ 그로부터 주어지는 생활의 평안을 말합니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이 말씀에서 평안이 ‘에이레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을 이기는 평안을 말합니다.

3) 성탄의 축복은 평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고, 마음을 평안을 누리며, 세상을 이기는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탄절을 닷새 앞둔 강림절 넷째 주일에 성탄의 축복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성탄의 축복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긍휼이 임한 것입니다.
희망이 주어진 것입니다.
평안이 임한 것입니다.
이 성탄의 축복을 믿고 맘껏 누리는 성도들이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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